"> 아들이 내어준 하늘 — 조종사의 날, 광주에서 보낸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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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내어준 하늘 — 조종사의 날, 광주에서 보낸 하루

by 산울림 2026.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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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하는 부대에 초대

아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부대에서 조종사의 날 가족초청행사를 하는데, 아버지가 꼭 와주셨으면 한다고. 그 한마디에 아내와 딸, 손주까지 온 식구가 짐을 꾸렸다. 전날 광주에 내려가 숙소에 짐을 풀었다. 창밖으로 낯선 도시의 불빛이 번지는데, 이상하게도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내일 아들이 매일 걸어 들어가는 그 문 안으로 나도 들어간다는 사실이, 자꾸만 마음을 뒤척이게 했다.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던 것들

부대에 도착해 안내를 받아 들어간 방에는, 아들이 미리 준비해 둔 한 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군복 한 벌. 그 위에 얹힌 빨간 마후라. 가슴에 달 명찰. 그리고 군화와 장갑까지. 아무렇게나 던져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각을 맞춰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버지 사이즈 맞춰서 따로 챙겨뒀어요."

무심하게 던지는 말 한마디에 목이 메었다. 아들은 아버지가 오늘 하루만이라도 자기와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자리에 서 보기를 바랐던 것이다. 빨간 마후라를 목에 두르는 손이 조금 떨렸다. 거울 속의 나는, 예순이 넘은 아버지가 아니라 아들과 나란히 선 한 사람의 동료 같았다.

 

아내의 조종석

먼저 아내가 시뮬레이터 조종석에 앉았다. 평생 운전대도 조심스럽게 잡던 사람이, 조종간을 쥐고 화면 가득한 하늘 위로 기체를 밀어 올렸다. 아들이 옆에서 "엄마, 조금만 더 당겨요" 하고 손짓하는데, 아내는 아이처럼 웃다가, 기체가 활주로를 벗어나 떠오르는 순간 잠깐 말을 잃었다. 아들이 매일 마주하는 세계가 어떤 것인지, 그 한 장면으로 조금은 알 것 같았다고 나중에 말했다.

TA-50, 그리고 활주로 한 바퀴

그리고 내 차례가 왔다. TA-50 훈련기 좌석에 앉아 벨트를 조이고, 캐노피가 내려오고, 엔진 소리가 몸을 통째로 흔들었다. 앞자리에는 아들이 있었다.

기체가 활주로를 미끄러지듯 달려 나가는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등이 시트에 눌리고, 지상의 풍경이 순식간에 아래로 내려앉았다. 활주로를 크게 한 바퀴 도는, 길지 않은 비행이었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에는 아들의 지난 세월이 다 지나갔다. 처음 자전거를 가르치던 날, 대학 합격 소식을 전하던 날, 그리고 임관식 날 처음 목에 마후라를 두르던 날.

내가 손을 잡아 이끌던 아이가, 이제 아버지를 하늘로 데리고 올라가고 있었다. 아버지로서 누릴 수 있는 영광이 이보다 클 수 있을까 싶었다. 지상에 내려섰을 때 다리가 조금 풀렸지만,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근무하는 부대

한식당에서의 점심

비행을 마치고 부대에서 마련해 준 한식당으로 향했다. 정갈한 상차림이 가족 수대로 놓였고, 손주는 신이 나서 이 접시 저 접시를 기웃거렸다. 딸은 동생에게 "오늘 하루 완전히 주인공이네" 하며 웃었다. 아들은 그 말에 별다른 대꾸 없이, 그저 아버지 앞접시에 반찬을 덜어 놓았다.

밥 한 끼가 이렇게 대접받는 자리가 될 줄은 몰랐다. 아들이 몸담은 곳에서, 아들 덕분에 받은 밥상이었다.

마지막 선물

헤어지기 전, 아들이 작은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멋진 이어폰이었다.

"아버지 KTX 타고 가실 때 쓰세요."

오늘 하루 받은 것이 이미 넘치는데, 이 녀석은 마지막까지 무언가를 더 쥐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부대 정문을 나서며 뒤를 돌아보니, 아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돌아오는 길

KTX 창밖으로 해가 기울었다. 아들이 준 이어폰을 귀에 꽂으니 소리가 참 좋았다. 아내는 옆자리에서 시뮬레이터 이야기를 몇 번이나 다시 했고, 손주는 무릎에서 잠이 들었고, 딸은 사진첩을 넘기며 조용히 웃었다.

나는 창에 머리를 기대고 오늘을 되짚었다. 군복과 빨간 마후라, 활주로를 달리던 진동, 상차림의 온기, 그리고 마지막 상자 하나.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 준비한 하루였다.

잘 자라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정작 그 자리에서는 하지 못했다. 이 글로 대신한다.

아들아, 정말 고맙다. 그리고 무엇보다, 늘 안전하게 날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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